AI 시대에 문과 뽑는 효성…파격 채용의 숨은 뜻 [권상집의 논전(論戰)]
AI 시대에 문과 뽑는 효성…파격 채용의 숨은 뜻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26. 8. 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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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회사 경영진은 국내외 소비자가 깊게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내놓은 AI 답변을 그대로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모든 이가 무비판적 태도로 순응하게 만들어야 이익이 창출될 수 있다고 한 이 기업은 역설적이게도 주어진 사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둘째, AI가 도출한 답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자기조절 학습 역량이 높았을 때 AI의 효과는 더욱 크게 발휘된다.
효성은 이번 채용 실험을 통해 AI 시대 인재상의 변곡점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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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기업의 이례적 ‘인문학 인재’ 찾기…비판적 사고의 가치에 주목 전공이 소양을 담보하나…‘사고하는 뇌’ 가려낼 채용 혁신이 다음 과제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지난해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는 어느 기업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해당 회사 경영진은 국내외 소비자가 깊게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내놓은 AI 답변을 그대로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모든 이가 무비판적 태도로 순응하게 만들어야 이익이 창출될 수 있다고 한 이 기업은 역설적이게도 주어진 사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선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최근 교내에서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AI 활용 역량을 평가했다. AI에게 단순히 질문해 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문제와 데이터를 해석하고 AI가 도출한 솔루션을 비판적으로 검증해 답안을 제출해야 하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그 결과, 꽤 많은 이가 답안 작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일부 지원자는 평소 AI를 통해 답만 찾다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검증을 요구했던 제시문에 매우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재계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지난 7월 중순 진행된 효성그룹의 '2026년 인문대 학생 신입사원 채용'이 단연 화제였다. 인문대 혹은 문과대를 졸업한 학생만 선발한다는 채용 공고는 국내 최초이며,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유사한 채용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계열사가 아닌 그룹 차원에서 인문학 전공자를 선발한다는 채용 공고 게시문엔 효성그룹의 최고경영자(CEO)인 회장의 생각과 결단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4월2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4월2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상생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왜 '공학·기술' 아닌 '인문학' 택했나
효성그룹은 화학, 첨단소재, 전력기기 등 전통적으로 공학과 기술 인력이 중요한 제조 기업이다. 경영, 경제 등 상경계 학생들도 효성 입사가 쉽지 않은 이유는 기술 분야의 인력 선발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사학, 철학 등 인문학 전공자뿐 아니라 국문, 영문 등 어학 계열을 포함하고 상경 계열을 제외한 공고에는 효성의 고민과 방향이 투영돼 있다.
AI는 사람보다 글도 잘 쓰고 통계 분석이나 번역, 정보 제공에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한 지 이미 오래다. 역사, 철학, 인간의 심리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AI가 신속하게 이론을 설명해 준다. 다수의 학술 연구에서도 AI가 대부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능과 사고력을 넘어섰다는 결과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를 반영해 기업에선 채용 인원까지 급격히 줄여 나가고 있다. AI가 일자리를 초토화하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AI의 역량이 고도화돼 정보가 넘쳐날수록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검증하며 판단하는 역량이 오히려 점점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발전하면서 과거 제조업 시대 인간의 경쟁력인 '정보 생산'이 이제 '의사결정을 위한 판단'으로 한 단계 진화한 셈이다. AI 역시 맥락 해석 능력을 키워나가고 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나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여전히 AI는 잘못된 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참고로, 우리가 학습하는 지식은 암묵지(Tacit Knowledge)와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나뉜다. 문서로 정리해 제공할 수 있는 형식지에선 AI가 인간의 역량을 압도한다. 하지만 문화적 맥락, 상황 판단 등 단순 정보나 말이 아닌 경험으로 추론할 수 있는 암묵지 앞에서 AI는 지금도 버벅거린다. 첨단기술과 데이터 등 명시적인 지식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관한 판단은 인간의 몫이란 얘기다.
효성의 실험이 던진 화두, 남겨진 과제
최근 학계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인 연구진이 지난해 '지능 연구(Journal of Intelligence)'에 게재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학생의 고차원적 사고를 향상시키는가?' 논문은 29개 연구자료에서 보고된 59개 실험 및 준실험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다음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AI를 사용할수록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는 향상된다. 둘째, AI가 도출한 답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자기조절 학습 역량이 높았을 때 AI의 효과는 더욱 크게 발휘된다.
연구는 AI가 인간의 사고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기존 학계의 주장을 반박한다. 다만 주목할 점은 AI 자체가 생각하는 인간의 역량을 완벽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솔루션을 인간이 비판적으로 활용해 사고할수록 사고력 증진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즉 AI가 내놓은 지식에 관해 다시 질문하고 맥락과 상황을 고려해 재해석하고 최종 판단하는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이 연구는 지적한다.
효성이 그룹 차원에서 왜 인문학 전공자를 선발해야 하는지에 관해선 국내 기업의 경영진 모두가 공감하며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꼭 지원자의 전공을 인문학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냐는 점이다. 인문학 전공자로 지원 분야를 국한한 건 인문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분명히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자칫 학문의 본질을 전공만으로 한정해 해석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다양한 문화와 상황의 관점을 해석하며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인문학 전공자가 반드시 인문학적 소양을 다른 전공보다 더 잘 갖췄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이공계와 상경계의 지원 자체를 차단한 부분에서 취업준비생들의 불만이 쏟아진 이유다.
효성그룹은 지금까지 늘 열린 채용을 강조하며 다양한 지원자를 선발하기 위해 노력했고, 채용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3년에는 전공, 나이, 학점, 영어 성적에 제한을 두지 않고 블라인드 토론 면접을 진행해 호평받기도 했다. 효성의 1단계 실험이 인문학 전공자 선발에 있었다면 2단계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진짜 인재를 발굴하려면 효성그룹의 기존 면접 질문과 진단 문항 역시 원점에서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AI가 인간을 무비판적인 기계로 만들수록 기업은 끊임없이 본질에 관해 생각하는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효성은 이번 채용 실험을 통해 AI 시대 인재상의 변곡점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이다.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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